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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좋지 않았던 하루.

2011. 7. 3. 02:45 from Life
일요일 낮 12시부터 오프를 받기 위해선
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프 나가는 누군가의 백업을 서줘야 한다.

처음 생각은 이랬다.
어차피 12시에 오프 내보내는거, 12시 시간 맞춰서 보내주고, 그 전에 일 다 마치고 갈 수 있게 도와주자.
사실 오프 나가는 사람의 기본적 예의는 자기가 그날 해야하는 루틴 잡은 다 마치고 뒤를 부탁해~라고 하며 나가는 것.
그 루틴 잡 하는걸 돕겠다고 생각한거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일을 하기 위해 늦어도 아침 7시엔 일어나야 하는 상황.
그리고 오프 나가는 녀석은 자기 일을 다 하려면 혼자하면 4~5시간은 족히 걸리는 상황.
내 기준에선, 이녀석이 그래도 나만큼은 아니라도 내가 일어나서 내 일을 하고 있는 중엔 일어나 자기 일을 시작하고,
거기에 내가 합류하는게 옳다고 생각. 왜냐하면 근본적으론 '내 일'이 아니니까.
그러나 이 녀석의 제안은 엉뚱하게도, 자기가 아침 7시에 해야하는 채혈이 있는데, 그것만 내가 해주면 자기는 9~10시까지 늦잠을 잘 수 있으니
나보고 그 채혈 하나만 해달라고....;;

우선은 해주마..라고 얘길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닌거 같기도 하고,
이녀석이 그렇게 늦잠을 자버리면 12시까지 절대 일을 마칠 수 없을것 같아서 넌지시 제안을 했다.
내가 7시부터 일어나서 내 일을 하고 있을텐데, 정말 빨리 하면 9시엔 마칠 수 있다,
그 전에 네가 일을 시작하고 있으면 - 자기 일이니까!! - 내가 일 마쳐지는 대로 가서 도와주고, 그럼 제시간에 오프 나갈 수 있지 않겠냐.
그렇게 하자고 약간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더라.

난 예정대로 7시쯤 일어나서 내가 해야할 채혈을 마치고, 이녀석의 부탁을 위해 채혈을 하러 갔는데,
왠걸, 간호사들이 이미 해뒀더라. 그 선생님은 왜 시간 맞춰서 안오냐고..
그래서 아직 안왔냐..고 물으니 그렇다는 대답에, 그럼 내가 지금 졸린 몸을 끌고 아둥바둥 내 일을 달려서 마칠 필요가 있겠는가..란 생각.
이녀석이 일어나서 자기 일 시작하고나면 나도 남은 내 일 마치고 도와주러 가겠다..고 좀 나쁜 마음을 먹고 일단 숙소.

그래서 한시간 앉아서 자는둥 마는둥 하고 다시 일 시작한게 10시 50분..이녀석도, 나도 별로 해둔 것 없는 상태.
이녀석이 나한텐 굉장히 가벼운 일을 맡기는 투로, 복잡한거 말고 간단한 것만 형이 해주세요..라고.
복잡하고 시간 오래 걸리는건 자기가 다 할거란다.
순진하게 믿고 한 두명 상처부위 소독을 하고 있으니, 12시 정각쯤해서 이녀석이 자기가 할 분량 남은건 오후에라도 와서 할테니 놔두라..고.
그래서 나도 잠시 다른 일을 해보려...고 할때부터 이녀석 백업 업무가 막 몰아치기 시작.
응급실에 환자가 세명이 몰려오고, 여기저기서 이녀석을 찾는 전화들이 걸려오기 시작.

이리저리 다 몸으로 때우고 나서, 하나도 손 못댔던, 녀석이 넘겨주고간 '쉬운 일'들을 해보려고 시작한게 7시.
이녀석은 자기 일 하고 가는게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는데, 나는 남은 일 다 마치고 나니 10시 반.
그 뒤로도 응급실 환자 몇명 보고..

10시 반쯤 핸펀을 보니 녀석의 문자가 와 있더라.
일 많냐고.
오늘 대박이었다...라고 보내주려다가,
너 겨우 이정도로 맨날 힘들다고 했냐, 이거 니가 쉽다고 넘겨줬지? 라는 생각으로
아니, 별거 없었다~라고 웃으면서 대답.

너무 나열식으로 썼나. 여튼 참 지리하게 긴 글이 되어버렸구나.
하루가 딱 이랬네.
이타심, 배려까진 안바란다. 자기 일 자기가 하라는게 이기적인 행동은 아니잖냐.
자기 일은 자기가 하는게 일의 기본. 거기서 누가 도와주면 일이 마이너스가 되는거고,
누구 일 대신 해주면 일이 플러스가 되는거지,
남이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자기 일이 플러스 되었다고 생각하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넘길때는, 그게 어떤 경우든 자기가 힘든 케이스를 처리하고, 손쉬운 케이스만 넘기는게 예의인것 같다.
뭐, 아니라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글로 써서 방법을 인계해줘야 하는 그런 일들을 하라고 떠 넘기는건 좋아 보이지 않는구나.
일이 많다고, 내가 하는 일은 별거 아니란듯 얘기하던 네 모습이 생각이 나네.
내가 시간이 탱자 탱자 남는데 너 안도와주는 것 같아서 괘씸하더냐.
뭐, 미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었는데, 그걸 네가 먼저 표시해서 도울 마음이 없어지더라.
네 눈에 보이지 않고, 시간이 좀 남아 보인다고해서 덜 힘들거란 발상 자체가 좀 신선한 충격이었어.
스트레스와 피로는 일의 시간에 단순 비례하는게 아닌걸 충분히 알텐데 말야.

이런식으로 한명의 평판이 떨어지고, 반사적으로 난 좋아지는 것 같아서 그것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
근데 환자들까지 그러면 좀 곤란하지 않겠냐..그리고 간호사들도 결국 같이 일해야할 사람들인데.
누군들 조금 더 쉬고 싶지 않고, 누군들 한 번 더 움직여 일을 하고 싶겠냐.
방금 내려와서 자리에 앉자마자 또 콜이 와서 움직이는게, 누군들 귀찮지 않겠냐.
매번 prompt하게 움직일 수는 없겠지. 하지만 매번 sluggish한건 곤란하지 않겠냐.
그리고, 쉬운 파트, 어려운 파트 관계없이, 인턴은 기본적으로 다 힘들단다.
다 그런 중에 조금 더 열심을 내어보고, 조금 더 성실해져보기도 하고,
남을 한번 위해주기도 하고 그러는거지. 결정적인 순간에 짜잔하고 나타나서 해결사가 되는것도 멋지고 좋겠지.
누군가 난처해져있고, 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때 나타나서 그걸 해결해주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테니까.
그런데 난 그런 해결사보다는, 차라리 자기 일을 함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게 자기 일을 컨트롤하는게 더 옳다고 생각한다.
매번 큰 문제가 생겨 그걸 해결하는 것 보단, 문제가 생기지 않게 하는게 훨 중요하니까.
어쩌다가 한탄하는 잔소리가 되어버렸네. 볼 일은 없겠지만, 보면 또 잔소리 어쩌고 하겠구나.
후배들이나 학교 졸업하고 바로 인턴하는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세상을 배우고 생각과 시야가 넓어졌다고 하는,
그런 얘기들이 입에서만 나오는 얘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 일기 쓰는 맘으로 시작했는데, 무슨 충고 편지가 되어버리네.
많이 맺혔나보다. 풀자. 나라도 넓어지자. 마음의 폭이.
몸의 폭 말고;;;;;;;;
Posted by dr-chung 트랙백 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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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ddr | edit/del | reply 나다 2011.07.03 12:55

    HRC 유대리ㅡ이젠 과장ㅡ같은 인간이구만요.